▣나의 이야기▣

차(茶)文化

물안개2 2009. 7. 26. 15:40

 1. 차(茶)의 역사

차나무의 어린 잎을 따서 만든 음료를 차라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율무차, 인삼차 등과 같이 곡류, 과실류, 식물의 잎·꽃·뿌리 등으로 만든 기호 음료 전체를 칭하기도 하나, 엄밀한 의미에서의 차란 차나무의 잎을 말한다. 율무차는 탕에 속하는 것이다.

차나무는 식물학상 산차아목(山茶亞木), 산차과(山茶科), 차속(茶屬), 차종(茶種)의 종자 식물로서 학명은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lia sinensis)이다. 차나무의 원산지는 중국의 동남부와 인도의 아샘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종은 잎과 나무가 작은 관목으로 '중국 소엽종'이라 하고 추위에 강하고 녹차용으로 적합하다.

인도종은 인도와 중국 운남성 일부의 열대, 아열대에서 자라며, 잎이나 나무가 큰 교목으로 '인도 대엽종'이라 하고 홍차용으로 적합하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차나무는 모두 '중국 소엽종'으로 다 자란 경우도 2m를 넘지 않지만, 중국 운남성에는 높이가 30m나 되는 수령이 천년에 가까운 차나무도 있다. '중국 소엽종'과 '인도 대엽종'은 전혀 다른 종류의 차나무라는 주장도 있지만 염색체 수가 같으므로 세포유전학적인 차이는 없다고 한다.

차나무가 자라기 위해서 기후는 연평균 기온 13도 이상, 강우량은 연평군 1,400mm이상이어야 하므로 고온과 많은 비가 필수적이다. 녹차용 차는 좀 냉랭하고 안개가 짙은 지방에 적합하며, 고지대일수록 차의 수획량은 적지만 향기가 좋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곳 화개땅이 차나무가 자라는데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차의 기원에 대한 설은 중국 신농씨 때부터 음용했다는 설과 주나라 때부터 마셨다는 두가지 설이 팽팽하다. 그러나 전한시대인 기원전 59년에 작성된 노비매매문서인 <동약>에 차를 끓여 즐겨 마셨다는 기록을 미루어 보아 적어도 한나라 때부터는 차의 재배와 음용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차를 음용했을까? 이에 대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삼국사기>>에 따르면 7세기 초 신라 선덕여왕 때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삼국유사>>에는 서기 48년 가락국 수로왕에게 시집오는 야유국 공주의 배에 비단, 금, 은 등의 패물과 함께 차나무 씨가 실려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신빙성 있는 기록은 흥덕왕 828년 사신이었던 대렴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앗을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었는데, 이때부터 차를 마시는 풍속이 전래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 볼 때 삼국시대에는 이미 대중화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각 시기별 차의 역사를 보자


삼국시대

<<삼국사기>>를 통해 제 27대 선덕여왕 때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기록과 고구려 벽화를 통해 서도 삼국시기의 차생활을 엿볼 수 있다. 즉 고분에서 발굴된 전차(錢茶)를 통해 볼 때 무덤까지 넣은 점으로 미루어 고분의 주인공이 생전에 차를 몹시 좋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차를 부처에 공양한 점을 통해서도 이때 차를 널리 음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백제의 차생활은 일본 문헌을 통해 전해지는데, <<일본서기>>에는 메이천황13년 백제의 성왕이 담혜화상 등 16명의 스님에게 불구와 차를 일본에 보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동대사요록>>에도 백제의 귀화승인 행기가 차나무를 심었다는 기록되어 있다.


통일 신라시대

제 27대 선덕 여왕 때 차가 도입되어 이로부터 200년 후인 제 42대 흥덕왕때 지리산 자락에서 재배하였다. 신라시대에는 왕과 귀족, 승려와 화랑도, 학자들을 중심으로 차생활이 이루어졌다. 특히 승려와 화랑간에 차를 마시는 풍습이 성행했으며, 승려들의 차생활은 미륵신앙과 연관되어 행해진 기록이 전해진다. 차는 정신을 맑게 하고 잠을 쫓아 주기에 참선을 행하는 승려들에게 도움을 주고 나아가 불전에 공양하게 이른 것이다.


고려 시대

차가 궁중음식으로 부각되면서 국가 의식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진다의식(進茶儀式)이 따랐다. 진다의식은 술과 과일을 임금에게 올리기 전에 임금이 먼저 차를 청하면 신하가 차를 올리는 것이다. 차는 왕이 신하와 백성에게 하사하는 귀중한 예물로서 외교상에서도 중요 예물이었다. 고려가 원에 예물을 보낼 때에도 향차가 들어 갔으며, 차를 맡아 보는 관아인 '다방'이 설치 되었다.

고려도 신라와 마찬가지로 귀족, 문인, 학자들이 차를 즐겼다. 초엽에는 귀족 중심이었으나 무신난 이후로는 문인과 학자들이 차문화를 꽃피웠다. 승려들은 수행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차를 즐겨 마셨다. 특히 사원에서는 차 끓이기를 서로 겨루는 '명선'이라는 풍속이 행해졌다.


조선 시대

조선 왕실은 고려와 달리 초엽부터 왕실 행사에 차를 의례로 행하는 일이 적었으며, 일부는 형식만 남아 차를 쓰지 않거나 술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실의 관례적인 차생활은 계속되고 의식도 격식화되었다. 궁중에서 지내는 모든 제사에 차례가 포함되어 궁중에서의 차례를 관장하는 기관으로서 골처럼 '다방을 내시원에 설치되었다.

귀족, 승려, 문인 사이에서 애용되던 차는 고려시대의 전통이 조선시대 초엽까지 계속되어 차를 즐겨 마셨다. 일반 평민 역시 차가 생산되는 지방을 중심으로 기호음료로서 애용되었다.그러나 불교 배척으로 차를 가장 만힝 소비하는 사원의 재정사정이 곤란해지면서 차의 증산은 물론 사원 주변에 있던 많은 차밭을 관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그리하여 사원이 산속으로 쫓겨나 차생활의 명목이 이어졌던 사원과 평민 사이의 교류가 적어지므로서 차를 즐기는 인구도 줄어들었다.

결국 조선 시대에는 차의 저변 확대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나마 남녘 사원에서 적으나마 차가 만들어져 명맥을 유지하였다. 이에 19세기에 이르러 다시 차가 성행하였는데, '다도'라는 용어가 구체적으로 거론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당시 차를 중흥시킨 인물로서 정약용과 초의선사, 김정희 등을 들 수 있다. 정약용은 강진의 유배 생활 중 차를 즐기기 시작하여 자신의 호를 '다산'이라 칭하고 차와 관련한 많은 시를 남겼다. 또 강진을 떠나면서 제자들과 함께 '다신계'를 조직하기도 했다. 초의선사는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에도 통달하여 당시의 석학과 교류하면서 <동다송>과 <다신전>을 지어 우리 차의 우수성을 주장했다. 초의선사와 많은 논쟁을 벌였던 추사 김정희 역시 유배생활을 차로 달래면서 차에 관한 많은 시와 일화를 남겼다.


근대와 현대

19세기에 차를 마시는 여건이 새롭게 조성되면서 차를 마시는 풍습이 차츰 되살아 났지만 여전히 일부 계층에 그쳐 일반화되지 못하였다. 이에 19세기 외국인들이 왕실에 다업의 진흥을 건의하여 1883년부터 '농상사'라는 관청이 생겨났다. 이곳은 차의 재배를 관장하고 차 재배를 위한 조사를 지시하였으며 청나라로부터 모종을 수입하기도 했다. 당시 고관들 사이에는 '다화회'라는 모임도 자주 열렸다.

일제시기에는 차의 생산, 보급, 연구 등이 일본인들에 의해 진해되었다. 따라서 식민지 지배를 위한 다원이 조성되었으며, 고등여학교와 여자 전문학교에서 차생활 교육이 이루어졌다.
이후 1960년대부터는 다시 차에 관한 관심이 일기 시작하면 1970년대 후반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지금은 동호인이나 친목회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차를 애용하고 있다. 1990년에 들어서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차에 대한 효용이 널리 알려지면서 차의 저변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차와 가까워질 수 있도록 기호에 맞는 차를 생산하고 있다.

내용출처 : [기타] 인터넷 : http://my.dreamwiz.com/sunhwa/차의%20향/차례/index.htm

 

 

 


차의 성분과 효능                   

 


우리 선조들은 차가 육체와 정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고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옛날에는 차를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신선이 된다고 하는 영약(靈藥)의 의미로 '선단'(仙丹) 또는 '단약'(丹藥)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차를 선단이라고까지 극찬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조상들이 차를 마신 가장 큰 이유는 차가 건강에 이로웠기 때문이다.

차는 모든 병을 고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단지 다른 음료에 비해 부작용이 거의없고 몸을 이롭게 하며 차 마시는 행위를 통해 정신 건강에 좋기 때문에 차 마시기를 권장하는 것이다.

1. 차의 성분

옛 선인들은 오랜기간동안 차의 마셔오면서 터득한 체험으로 차의 이로운 점을 알고 이를 음용해 왔었다. 차의 구성성분에 대한 과학적인 규명은 1827년 오드리(영)에 의해 발견된 녹차 속의 데인(Thein)이라는 성분이 카페인과 유사한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후 본격화되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녹차의 성분은 품종, 채엽시기, 제조방법등에 의해 달라지나 일반적으로 75%~80%의 수분과 20%~30%의 고형물로써 이중에는 폴리페놀, 카페인, 비타민, 아미노산, 식물색소, 탄수화물, 유기산, 무기성분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형물의 특징을 살펴보면,

폴리페놀
플라바놀(flavanols), 페놀 산(phenolic acid), 류코안토시아닌(leucoanthocyanins), 페놀 산(phenolic acid)과 depsides등이며 이 중 떫은 맛을 내는 카테친이라 부르는 플라바놀 성분이 전체 폴리페놀 함량의 75.8%를 차지한다. 이 폴리페놀은 일조량이 많을때 함량이 높아진다.

카페인
녹차의 카페인은 폴리페놀 성분과 결함해 크림을 형성하여 낮은 온도에서는 불용성으로 유지되어 체내에서 동화속도가 낮기 때문에 커피의 카페인처럼 몸속에 쉽게 흡수되지 않는다. 카페인은 어린 잎일수록 함량이 많고 차광 재배하면 함량이 증가한다.

비타민
차에는 여러 비타민이 함유되어 있고 이중 비타민C가 90%로 환원형으로 녹차에 많이 들어있다. 그밖에 비타민 B1, B2, 니코틴산, 판토텐산, 엽산, 비오틴이 함유되어있다.

아미노산
차 맛에 영향을 주며 아미노산 성분으로 데아닌, 글루타민, 아스파라긴, 아르기닌등이 함유되어 있다. 차광하여 일조량을 감소함으로써 폴리페놀을 감소시키고 아미노산을 증가시켜 맛이 좋은 차를 생산할 수 있다.

식물색소
차의 외관 및 수색에 영향을 주며 주요 색소 성분으로는 엽록소, 카로티노이드, 안토시안등이 있다.

유기산
차의 호흡과 대사에 관련이 있고 차잎중에는 사과 산, 프로피온 산, 호박 산, P-쿠말 산, 콜로로젠 산등이 있다.

무기성분
녹차의 무기염류 성분으로는 칼륨, 인산, 칼슘, 마그네슘, 철, 나트륨, 망간, 불소등이 함유되어있다. 어린잎에는 인산이나 칼륨이, 성장해감에 따라 칼슘, 철, 망간, 알루미늄 등이 증가한다.


2. 차의 효능

옛 선인들은 오랫동안의 음차생활을 통한 경험적인 터득을 통해 차의 이로운점을 인지하였으며 또한 서양의학이 발전함에 따라 과학적인 성분 분석에 의해 차가 인체에 미치는 효능이 많이 밝혀졌다. 먼저 옛 문헌에 의한 차의 이로운점을 살펴보고 이어서 차의 과학적 약리 성분에 의한 효능을 알아본다.

가장 오래전에 차 문화가 정립된 중국의 다도는 당나라 육우(陸羽)가 쓴 다경(茶經)에서 "신농의 식경(食經)에 이르기를 차를 오래 마시면 즐겁고 힘이 있게 한다"라고 하였다.

다도에 대한 체계는 당나라 현종때 육우가 지은 다경(茶經)이며 여기에 나타난 기본 이념은 중용검덕(中庸儉德)이다. 중용이라함은 "어느 쪽으로 치우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알맞은 일"을 일컫고 검덕이란 "검소한 마음가짐"이란 의미로 다경(茶經)에서 "차는 성질이 차므로 행실이 깨끗하고 덕망있는 사람이 마시기에 가장 적합하다. 만약 열이 나고 갈증이 나거나 번민하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눈이 껄끄럽거나 팔다리가 번거로워 뼈마디가 잘 펴지지 않으면 너댓 번만 마셔도 제호나 감로처럼 효과가 있다"라고 하였다.

당나라 유정일(劉貞一)의 '차선십덕'(茶扇十德)에서 차의 효능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① 우울한 기분을 흩어지게 한다.
② 졸음을 없앤다.
③ 기력을 솟게 한다.
④ 병을 제거한다.
⑤ 공경심을 표하게 한다.
⑥ 예절을 지키게 한다.
⑦ 몸을 다스리게 한다.
⑧ 마음을 아름답게 한다.
⑨ 맛을 즐긴다.
⑩ 도리를 생활에 옮긴다.

조선후기 명의 허준은 그의 저서 동의보감에서 "차는 성질은 약간 차며 맛은 달고 쓰며 독이없다. 기를 내리고 오랜 식체를 삭이며 머리와 눈을 맑게 하고 오줌을 잘 나가게 한다. 소갈증을 낫게 하고 잠을 덜 자게 한다. 또한 굽거나 볶아서 먹고 생긴 독을 푼다. 수족궐음경에 들어가는데 덥게 해서 마시는 것이 좋다. 오랫동안 먹으면 기름이 빠져서 여위게 된다"라고 하였다.

다성(茶聖)이라 불리며 우리나라 다도를 정립한 사람은 조선후기의 초의선사로써 그의 동다송(東茶頌)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이백이 이르기를 옥천사(玉泉寺)의 진공(眞公)이 나이 팔십에 안색이 복숭아, 오얏 같다 이곳 차의 향 맑음이 딴곳과 다르기에 젊어지게 하고 시든것을 떨치며 사람으로 하여금 장수하게 하더라"라고 하였다.

(李白云 玉泉眞公 年八十 顔色如桃李 此茗香淸 異于他 所以能還童振枯 而令人長壽也).

현대의학의 발달로 차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많은 효능들이 밝혀졌다. 주요 효능을 간략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항암작용
녹차의 폴리페놀 성분 중 카테친류는 발암성을 갖는 불안정한 단자와 결합해 발암물질의 활성을 무력화 시키는 항암효과가 있다.

각성작용
정신을 맑게하고 기억력, 판단력, 지구력을 증강시킨다.

강심작용
적당량의 카페인은 혈액순환을 돕기 때문에 오랫동안 차를 마시게 되면 약해진 심장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이뇨작용
신장의 혈관을 확장시켜 뇨량을 촉진한다.

해독작용
녹차의 폴리페놀은 알칼로이드와 결합해 체내의 흡수를 막고 배출시키는 작용을 한다.

살균작용
차를 진하게 끓여 마시면 차잎 성분중의 폴리페놀과 식중독 세균 또는 독소성분이 결합되어 해독 작용을 나타낸다.

수렴작용
타닌에는 혈관을 수축시키는 작용이 있고 출혈을 완화하고 위와 장의 점막을 보호하고 활동을 촉진시킨다.

소염작용
차의 폴리페놀은 염증의 원인이 되는 세균의 성장을 저지하는 작용이 있다.

기 타
찻잎 속의 비타민은 스트레스 해소, 피부미용효과를 폴리페놀내 카테친류는 동맥경화나 고혈압등 성인병 예방 및 노화를 방지한다.

 


 

 

 차(茶)의 예절(禮節)

  다도(茶道)란?              

  몸의 수련은 차의 효능으로 달성되며, 마음의 수련은 군자와 같고 사악함이 없는 차의 성미를 따름으로써 달성된다.

중국의 다도는 당나라의 육우(陸羽)가 《다경(茶經)》(760)을 짓고, 호주자사(湖州刺史)인 안진경(顔眞卿)이 삼계정(三癸亭)이라는 다정(茶亭)을 지어 육우에게 기증한 773년에 완성되었으며, 이념은 《다경》에 적혀 있는 중용검덕(中庸儉德)이다.

또, 일본의 다도는 선종(禪宗)의 헌다(獻茶) 의식이 발달된 심미적인 종교로서 무로마치[室町]시대(1336~1573)에 사카이[堺]의 무라다 슈코[村田珠光]에 의하여 형성되고, 그의 제자인 센노리큐[千利休]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일본의 다도 정신은 자득[]을 바탕으로 하여 깨우침[覺]의 종교차(宗敎茶)를 인연으로 한 현성(現成:禪)으로 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신라의 화랑에 의하여 다도의 싹이 텄다고 할 수 있는데, 화랑도가 다도를 형성한 편모는 《삼국유사》의 <경덕왕 충담사> 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경덕왕(재위 742∼765)이 어느 해 3월 3일, 궁성 서쪽의 귀정문(歸正門) 누(樓) 위에 나가서 좌우 신하들에게 “누가 길거리에서 위의(威儀) 있는 중을 한 사람 데려올 수 있겠느냐”고 하여 적임자로 불려 온 사람이 기파랑도(耆婆郞徒) 충담승이었다. 경주 남산 삼화령의 미륵세존에게 차를 달여 공양한 후 벚나무통을 둘러메고 돌아오는 충담을 경덕왕은 반갑게 맞아들여 통을 열어 보니 다구(茶具)가 담겨 있었다. 왕이 “과인에게도 그 차를 한 사발 나누어 주겠느냐”고 하자 충담은 곧 차를 달여 바쳤는데, 차맛이 특이하고 찻사발 속에서는 독특한 향기가 그윽하게 풍겼다. 또 왕은 “짐이 듣건대 스님이 기파랑을 찬미한 사뇌가(詞腦歌)는 뜻이 매우 높다던데, 과연 그러하냐”고 물으니 “그렇습니다”고 한 즉, “그렇다면 짐을 위하여 백성을 다스려, 편안하게 하는 노래를 지어 달라”고 하여, 충담은 곧 칙명을 받들어 안민가(安民歌)를 지어 바쳤다. 왕은 이것을 높이 평가하여 충담을 왕사(王師)로 봉하려 하였으나, 그는 재배하고 굳이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한다.

 

[차 마시기]

泡茶法; 포차라고도 한다. 잎차를 우려서 다탕으로 우려마시는법
끽다(喫茶): 보통 차를 마시는것을 끽다라고 하는데 물론 마실끽자이다.
그러나 보통 차를 마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혀끝에 떨어뜨려서 맑은것이 사방에
흩어지면서 목구멍으로 내려갈때 의 경우를 끽다라고 한다.

차를 마시는 법:

차잔을 쥐고 가슴높이로 들고 색을 감상한후 가까이 가져와서 향을 맡고,마실때 맛을 음미한다.
싱그른 향과, 은은한 색,오묘한 맛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신전에; 혼자마시는 것을 신(神);신령스럽고 그윽하여 이속한 경지를 말함
둘이 마시면 승(勝);좋은 정취와 한적한 경지를 말함
셋이 마시면 취(趣);취미적이고 즐겁고 유쾌한 경지
오 륙명이 마시면 범(泛);평범하다 구속받지 않는다.
7-8 명이 마시면 시(施);시란 음식을 나누어먹는 박애정신을 의미

색향미로 감별하되 차에는 진미 진향 진색이 있다.

향에는 4향이 있다.
진향 眞香 ;청량한 아침이슬을 담뿍담은 싱그러움을 갖춘 것을 진향
난향 蘭香;차를 만들때 불에 거슬리지 않았을때 나는 향
청향 淸香;설익지도 않고 맑은 것을 청향
순향 純香;겉과 속이 똑같은 순수한것이 순향

차를 마시는 중대한 이유
* 건강에 이롭기 때문이다.
* 사색의 공간을 넓혀주고 마음의 눈을 뜨게 해준다.
* 사람으로 하여금 예의롭게 해 주기 때문이다.

차의 9가지 德
1 머리를 맑게 해 준다.
2 눈을 밝게 해 준다.
3 귀를 밝게 해 준다.
4 밥맛과 소화를 촉진시켜 준다.
5 술을 깨게 해 준다.
6 잠을 적게 해 준다.
7 갈증을 멈춰 준다.
8 피로를 풀어 준다.
9 추위나 더위를 막아 준다.

* 古來聖賢俱愛茶 . 茶如君子惺無牙 *
(옛부터 성현이 다 차를 사랑했는데 차가 군자와 같아서 성품이 사악하지 않다.
冷井才垂경(두레박길를을경) 晴窓便點茶
우물이 차니 물을 길을 만하고
창문이 환하니 차를 끓이기에 좋네
觸侯功五熱 徹骨掃群邪
목구멍에 닿아서 오장의 열기를 다스리고
뼈속을 뚫고 들어가 삿된 기운을 몰아내네

차 마시기 좋은때는:
* 시끄러운 것보다 조용한 것이 좋고,
* 사치스러운 것보다 소박한 것이 좋고,
* 복잡한 것보다 간소한 것이 좋고,
* 일이 많은 것보다 적은 것이 좋고,
* 잡념이나 망상을 내는 것보다 한 생각으로 통일하는 것이 좋고,
* 부담스런 이야기보다 청담이 좋고
* 비오고 바람이 몹시 부는 날보다 맑고 고요한 날이 더 좋고,
* 손님이 많은 것보다 적은 것이 더 좋고,
* 지저분한 방보다 깨끗한 서재가 더 좋고,
* 잘 우는 아이나 말 많은 계집보다 뜻이 높은 친구가 더 좋고,
* 냄새가 많이 나는 부엌보다는 깨끗한 응접실이 더 좋고,
* 불필요한 도구는 없을수록 더 좋고,
* 시를 읊거나 책을 읽을때가 좋고,
* 그림을 감상하고 거문고나 가야금을 연주할 때가 좋다.

茶人으로서 고쳐야 할 행동:
* 남의 차는 업신 여기고 자기 차만 좋다고 하는 사람
* 중국차나 일본차만을 애음하며 한국차는 경멸하는 사람
* 차마시는데 소란스럽고 말이 많은 사람
* 남의 예절은 우습게 여기고 자기 법도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
* 남의 잘못 하나를 지적하면서도 자기 잘못 열은 모르는 사람
* 너의 유파 나의 유파를 만들어 파당을 조직하는 사람
* 차 마시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
* 차를 통해 개인적 이득을 노리고 사람들을 모아 선전하는 사람
* 차를 조금 안다고 하여 남 앞에 뽐내고 군림하려는 사람
* 일본차를 배워 가지고 들어와 한국차라고 속여서 가르치는 사람
* 한가지 잘못을 보고 열가지 모두가 다 틀렸다고 시비를 거는 사람
* 차라고 하면 남보다 앞서 말하려고 날뛰는 사람
*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워하는 사람
* 얄팍한 지식으로 천하를 다 아는 듯이 으시대는 사람
* 때와 장소를 모르고 끼어들고 참견하는 사람
* 한국차를 중국차나 일본차에 맞춰서 해석하려는 사대근성을 가진 사람
* 우리 다법은 무시하고 일본다법을 칭송하며 찬양하는 친일사상이 농후한 사람
* 글로써 남과 시비 다투기를 일삼는 사람
* 허위와 거짓을 진실인양 속여서 왜곡하는 사람
*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을 매도하는 글을 남발하는 사람
* 우리 차의 문헌적 해석을 중국에만 매달리는 사람 (*한국다예참조)

      자료출처; http://myhome.thrunet.com/~ykj77/frame001.html

 


시대별 다도의 정신


1) 신라시대

《삼국유사》의 수로부인·처용랑·도화녀(桃花女)와 비형랑(鼻荊郞)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라인들은 신체미를 숭상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러므로 미모의 남자를 뽑아서 곱게 꾸민 화랑은 신체미 숭배사상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화랑도가 다도를 수련한 것은 이러한 외형미 못지않게 내면의 심성까지 미화하기 위한 구도적인 정신에서였다.

뿐만 아니라, 삼국통일의 성업을 성취한 정신력의 배양도 구도적인 다도의 영향이었다. 또 “마음이 맑아야만 도가 보인다(澄懷觀道)”는 말처럼 화랑도의 아름다운 덕망은 다도의 수련을 통한 맑은 마음에서 샘솟은 것이었다. 이렇게 수련된 화랑도의 아름다운 정신은 《삼국사기》의 열전과 《삼국유사》에 수록된 바와 같이
아름다운 덕행으로 점철되었다. 따라서 신라의 다도정신은 미덕이라 할 수 있다.


2) 고려시대

고려의 다도정신은 다가(茶家)들이 읊은 차시(茶詩)에 많이 보이는 망형(忘形)의 경지이다. 예를 들면, 이규보(李奎報)의 《빈강의 촌집에 묵다(宿瀕江村舍)》에는 강가를 방랑하니 저절로 형체를 잃네(江邊放浪自忘形), 임서하(林西河)의 《찻집에서의 낮잠(茶店晝眠)》에는 무너지듯 평상에 누우니 문득 형체를 잃네(頹然臥榻便忘形), 이숭인(李崇仁)의 《신효사 감스님방을 적다(題神孝寺師房)》에는 담쟁이덩굴 무늬 옷과 흰 장삼 차림에 이미 형체를
잃네(蘿衣白衲己忘形) 등이 있다.

망형이란 자신의 형체를 잊고 무위자연의 도(道)를 깨치는 것으로서 망기(忘機) 또는 좌망(坐忘)이라고도 한다. 좌망이란 단정하게 앉아서 잡념을 떨쳐 버리고 무차별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망형의 다도정신은 고려청자의 다기(茶器)에도 투영되었다. 때문에 송나라의 태평노인은 《유중금(釉中錦)》에서 감서(監書)의 술, 단계(端溪)의 벼루, 휘주(徽州)의 먹, 낙양(洛陽)의 꽃, 건주(建州)의 차, 고려청자의 비색은 천하에서 제일이라고 격찬하였다.


3) 조선시대

다도에는 오관(五官)이 동원되는 외에도 그림 ·노래 ·춤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종합예술이라고 한다. 잎차 중심의 조선시대에는 다가들이 차를 마시면서 시를 읊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청담을 나누는 취미를 즐겼다. 차마시기의 흥취는 유독한상(幽獨閑賞)에 있었다. 이 때 다가들은 소요(逍遙) ·자득(自得)·무집착·비우사상(庇雨思想) 등의 심상으로 다도를 수련하였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읊은 차시에는 극한 상황을 소요와 자득의 정신으로 극복한 모습이 드러난다. 소요정신이란 온갖 욕망을 버리고 유유자적할 때 누릴 수 있는 자유로서, 현실을 관조하고 긍정하는 달관의 경지이다.

한편, 일본의 다도정신인 자득이란 우리의 안빈낙도와 견줄 수 있는 것이지만, 우리의 자득이란 다산처럼 절망적인 유배생활을, 선택한 운명인 양 역설적으로 극복하는 능소능대(能小能大)한 품성을 말한다.

무집착은 정약용의 제자인 승려 의순(意恂)이 읊은 “산천도인의 사차시를 받들어 화답하여 짓다(奉和山泉道人謝茶之作)”라는 차시에서 집착하지 않는 것을 바라밀(波羅蜜)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불가의 무집착은 유가나 도가의 좌망에 담겨 있는 무집착과 개념이 같다.

비우사상에 의한 다도정신은 안빈낙도와 청백리 사상을 함께 담고 있는
차때[茶時]라는 미풍양속으로 표출되었다. 비우사상이란 정승 유관(柳寬)이 장마철에 비가 새는 방에서 우산을 받고 살았다는 우산각(雨傘閣)의 고사에서 비롯되어 그의 외증손인 이희검(李希儉)으로 이어지고, 그의 아들인 이수광(李光)이 재건한 비우당(庇雨堂)에 이르러 성숙된 청빈사상이다. 이수광이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사헌부의 관리들이 탐관오리를 탄핵하는 차때를 적으면서 사헌부 감찰의 검소함을 역설한 것도 비우사상과 맥락이 통하는 것이다.

결국, 한국의 다도정신은 시대별로 양상은 다르지만, 공통의식은 무아의 경지이다. 왜냐하면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란 맑은 것, 아름다운 것, 깊은 것이 샘솟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시대별 다도의 법식


1) 신라시대


신라시대에는 《다경》에 의한 제다법과 자다법(煮茶法)이 준용되었다. 전남에 전승되는 엽전 모양의 돈차[錢茶:綠苔錢, 靑苔錢]의 제다법은 신라시대 제다법의 유습으로서, 《다경》에 적힌 제다법과 거의 같기 때문이다. 또한, 자다법에 대해서도 최치원(崔致遠)의 <진감국사비문(眞鑑國師碑文)>에 다시 중국차로 공양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섶나무로써 돌솥에 불 때어 가루를 내지 않고 달였다고 적혀 있는데, 이것은 《다경》에 적혀 있듯이 떡차[餠茶]를 가루내는 방법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고, 다만 찻가마[] 대신에 돌솥을 사용한 것이 다를 뿐이기 때문이다.

《다경》에 의한 떡차의 제다법과 자다법은 다음과 같다.


① 음력 2∼4월, 차나무에서 딴 찻잎을 종다래끼에 담아 온다.

② 밑바닥에 대발을 깐 시루에 찻잎을 넣은 다음 물을 담은 가마에 얹고 쪄낸다.

③ 쪄낸 찻잎이 식기 전에 절구에 찧는다.

④ 찧은 찻덩어리를 틀에 박아내어 대자리에 널어서 말린다.

⑤ 차가 굳기 전에 송곳으로 복판에 구멍을 뚫고 대꼬챙이에 꿰어 불에 말린다.

⑥ 마른 차를 화롯불에 쬐어 장육기(藏育器)에 저장한다.

⑦ 달이려면 대집게에 차를 끼워서 차의 양면이 부풀어 오르도록 불에 쬔다.

⑧ 구운 차의 향기를 보존하기 위해 종이 봉지에 넣고 열을 ?

⑨ 차를 나무매통으로 갈아서 가루떨개로 가루를 모아 비단체에 쳐낸 다음 차합에 구기[則]와 함께 담는다.

⑩ 풍로에 찻가마를 걸고 물통의 물을 부은 다음 끓인다.

⑪ 물은 어목(魚目) ·용천연주(湧泉連珠) ·등파고랑(騰波鼓浪)의 3단계로 끓는데 용천연주 단계에 표주박으로 물을 떠내어 익은물바리[熟盂]에 담아서 식힌다.

⑫ 길이 두 자쯤 되는 대젓가락으로 가마 복판의 탕심(湯心)을 저으면서 물 1홉에 약 4 g의 가루차를 가마의 물속에 넣는다.

⑬ 등파고랑 이전에 익은물바리에서 식힌 물을 가마에 부어 끓는 물의 세력을 가라앉히며 차기(茶氣)를 낸다.

⑭ 가마를 교상(交床)에 내려 놓고 표주박으로 찻물을 떠내어 청자 찻주발에 담는다.

⑮ 1인당 3주발을 뜨거울 때 마신다.

2) 고려시대

고려시대에는 연고차(硏膏茶)를 마셨는데, 차는 섣달과 한식 이전에 따서 5등급으로 분류하였다. 특등품은 물에 담근 찻잎의 섬유질 한 가닥을 뽑아낸 것으로서 은선수아(銀線水芽)라 한다. 1등품은 응조(鷹爪)·작설(雀舌)·맥과(麥顆)와 같은 올차[早茶]이다. 2등품은 일창일기(一槍一旗)로서 간아(揀芽) 또는 기다(奇茶)라고 한다. 3등품은 일창이기(一槍二旗)의 차로서 중아(中芽)라고도 한다. 4등품은 한 싹에 3∼4잎이 달린 쇤차[老茶]이다.

연고차의 자다법은 다음과 같다.

① 연고차를 몽치[椎]나 방칫돌[砧]로 으깨어 차맷돌[茶磨]로 가루 낸다.

② 탕관의 물은 해안(蟹眼)·어목·용천연주·등파고랑·노탕(老湯)의 5단계로 끓는데, 3단계인 용천연주의 물을 표주박으로 떠내어 찻사발에 붓는다.

③ 찻사발에서 찻가루와 물을 융합시키는 점다(點茶)는 약 4g의 가루차를 찻숟가락으로 떠서 찻사발에 넣고 반점이 생기지 않도록 탕수를 붓는다. 찻숟가락이나 찻솔[茶]로 거품이 나도록 젓는데 7단계를 거친다.

1단계는 손은 가볍게, 찻솔은 무겁게 흔들면서 천천히 휘젓는다. 2단계는 찻솔을 힘차게 휘저어 차의 빛깔을 낸다. 3단계는 찻솔을 가볍게 휘저으면 60∼70%의 빛깔이 갖추어진다. 4단계는 찻솔을 천천히 저으면 차 거품이 난다. 5단계는 찻솔을 천천히 저으면 차의 향기가 난다. 6단계는 찻솔을 더욱 느리게 휘저으면 유액상의 거품이 난다. 7단계는 중용을 지키면서 탕수를 부으면 잔이 넘칠 만큼 유무(乳霧)가 생기다가 응고상태[咬盞]가 된다. 점다가 끝난 차는 거품을 균등하게 나누어 마신다.

3)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잎차를 마셨는데, 차기를 우려내는 엄다법(淹茶法)은 다음과 같다.

① 탕관의 물은 하안(蝦眼)·어목(魚目)·용천연주·등파고랑·수기전소(水氣全消)의 5단계로 끓는데, 3단계인 용천연주까지를 맹탕(萌湯)으로 치며, 물의 기세가 완전히 쇠하는 5단계를 순숙(純熟)으로 친다.

② 순숙한 물과 잎차를 다관에 떨구어 넣는 방법을 투다법(投茶法)이라고 하는데, 계절별로 차이가 있다. 겨울에는 탕수의 냉각을 방지하기 위하여 다관에 차부터 넣고 탕수를 붓는 하투법(下投法)을 쓴다. 여름에는 다관에 탕수부터 붓고 차를 넣는 상투법(上投法)을 쓴다. 봄·가을에는 다관에 탕수를 절반 붓고 차를 넣은 다음 나머지 탕수를 붓는 중투법(中投法)으로 한다.

③ 다관에서 잎차와 탕수를 융합하는 침출(浸出) 시간은 삼호흡법이 적용된다. 다시 삼호흡 동안을 기다렸다가 찻잔에 따라서 차탕의 빛깔·향기·맛을 음미하며 마신다.


4)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에는 한반도에 경제적 수탈과 민족문화의 말살정책을 시행하여 다업계와 다도계는 일본인이 독차지하였다. 일제는 식민정책의 근본이 경제적 융합과 사회적 융합에 있고, 사회감정의 융합에는 부녀자의 감화가 선결문제라는 데 착안하여 1930년대부터 고등여학교와 여자 전문학교에서 일본의 말다도(抹茶道)를 교육하였다.

5) 현대

8·15광복과 6·25전쟁의 격동기가 지나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1970년대부터 전통 다도의 계승발전을 위한 자생적인 운동이 전개되었다. 1979년에는 사단법인 한국다인회가 발족되어 전국적인 조직망을 통하여 다도문화의 저변확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982년 7월 23일 문화공보부(지금의 공보처)에서는 다음과 같은 다도문화의 진흥정책을 발표하였다. ① 전통 다도의 연구와 정립, ② 다도의 홍보와 교육, ③ 관광지에 다원 개설, ④ 차 생산기반의 확충과 내실화, ⑤ 재래차의 보호, ⑥ 다기의 대량생산 지원, ⑦ 한국다인회의 활성화 등이다.

                            내용출처 : 네이버백과사전

 

  중국차(茶)의 등급  

 중국차의 등급은 종류마다 각기 조금씩 다르다. 한국과 달리 일년내내 차가 생산되고 재배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서 차의 종류에 따라서 그 등급은 모두 다르다.   차의 등급은 차 잎 채취가 얼마나 일렀는지, 차 잎 채취 지역이 전통적인 명차 지역인지, 차 잎 가공 기술의 숙련도가 높은지 등의 몇 가지 요소로 결정이 내려지는데, 결국 차의 색과 향, 맛이 위의 여러 요소를 대변해 준다.  


차의 종류마다 차의 등급을 모두 말하기에는 매우 복잡하고 실제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중국의 차 도매시장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등급을 살펴보자. 차 도매시장에서도 차의 종류마다 약간은 다르나, 일반적으로 차 상인들이 취급하고 있는 차의 등급은 다음과 같다. 극품(極品), 특급(特級), 일급(一級), 이급, 삼급, 보통(普通, 혹은 一般)의 6등급으로 나뉘고, 그 중에서 극품은 또다시 上 中 下로 구분되고, 특급은 특1급과 특2급으로 나뉘어 모두 9등급으로 나뉘며, 4급 이하의 차는 모두 보통이나 일반으로 취급한다.  

 

차의 등급이 높으면 가격이 당연히 비싸다. 극상품 차와 보통 차의 가격 차이는 수백 배에서 수천 배까지 차이가 난다. 만약 차 경매시장에서라면 극품의 차들은 모두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는다. 그러나 같은 극품의 차라도 차의 종류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난다. 일반적으로 서호용정, 철관음, 무이암차 등의 가격이 높고 쟈스민, 백차, 홍차 등이 상대적으로 낫다.


◇ 차의 채엽시기에 따라 ◇

1. 명전차(明前茶) : 청명(淸明)인 양력 4월 5일경 전에 채취하여 가공한 차이다.  극품 등급의 차이다.

 

2. 우전차(雨前茶) : 곡우(穀雨)인양력 4월20일경 전에 싹이 피지 않은 아주 어린잎을 따서 만든 차이다. 곡우 뒤에 딴 차를 우후차(雨後茶)라고 한다. 


3. 세작(細雀) : 곡우에서 입하 사이에 채취한 것으로 상품이다. 양력 5월 5일경 사이에 딴 차로 잎이 다펴지지 않은 잎을 따서 만든 가는 차를 말한다. 가장 대중적인 차로 색, 향, 미를 모두 골고루 즐길 수 있다. 세작중에도 아침 이슬 맺힐 때 채취한 잎과 오후에 채취한 잎의 무게가 다르다. 오후에 채취한 잎은 새벽에 채취 한 잎보다 무겁고 맛도 덜하다.  


4. 중작(中雀) : 입하이후 즉, 양력으로 5월 5일 - 6월 중순 사이에 잎이 좀더 자란 후에 만든 차이다.    5. 대작(大雀) : 한여름 6월 하순 이후까지 중작보다 더 펴진 잎을 따서 만든 거친 차이다